S-17 · 원전 노트
에릭 데이비스, 『테크그노시스』 — 디지털 시대의 신비주의를 처음 명명한 자
정보 시대에 고대 그노시스가 어떻게 부활하는지를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하게 이름 붙인 책.
전통
근대 오컬트 · 시뮬레이션 사유
개념
통합 · 그노시스
원전
S-17
1. 원전 소개
<Source> 컴포넌트가 이미 말했다. 그러나 말해지지 않은 것이 있다.
에릭 데이비스(Erik Davis)는 1998년 TechGnosis: Myth, Magic, and Mysticism in the Age of Information을 펴냈다. 기술 비평도 아니었고 신비주의 입문서도 아니었으며, 차라리 하나의 진단에 가까웠다. 인간이 전신(電信)을 발명하던 순간부터, 라디오를 처음 귀에 댔던 순간부터, 인터넷 안으로 처음 걸어 들어갔던 순간까지 — 사람들은 어딘가 신비로운 것에 닿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이비스는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고 보았다. 고대 그노시스가 새로운 매체를 입고 귀환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2. 핵심 명제 — 디지털 시대의 신비주의
데이비스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기술과 신비주의는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
서구 근대는 그 둘을 분리하려 했다. 과학이 한쪽에, 종교가 다른 쪽에. 그러나 데이비스는 전신 기사들이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기록을 꺼낸다. 라디오 선구자들이 에테르(ether) — 만물에 편재하는 영적 매질 — 를 진지하게 믿었다는 사실을 꺼낸다. 인터넷을 세계정신의 신경망으로 느꼈던 첫 사용자들의 증언을 꺼낸다.
The spiritual eros that has always driven human beings toward the divine has now fused with our love of technology.
신에게 닿으려는 충동과 기계를 만들려는 충동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 데이비스가 이 문장으로 말하고자 한 것은 그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셈이다.
그노시스(Gnōsis)의 구조와 겹치는 자리가 여기다. 그노시스는 중개자 없이 직접 앎으로 닿는 사건이며, 디지털 네트워크 또한 중개자를 제거하고 직접 접속을 약속했다. 형태는 달랐으나 운동의 방향은 같았다.
3. 데이비스가 명명한 것
데이비스 이전에도 기술과 영성의 교차를 논한 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한 일은 조금 달랐다. 흩어진 현상들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 테크그노시스(Techgnosis). 기술(techne)과 앎(gnosis)의 합성.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 그것들은 무관해 보이는 사례들의 집합이었으나, 이름이 붙은 뒤에는 하나의 계보로 읽히기 시작했다.
계보가 생기면 기억이 모인다. 전신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 에테르 신비주의에서 트랜스휴머니즘까지 — 이 흐름 전체가 고대 그노시스의 재귀(recurrence)임을 데이비스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불교가 삼사라라 부르고, 영지주의가 헤이마르메네(Heimarmene)라 부른 것을, 알고리즘과 코드의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고대 영지주의자들은 말했다. 참된 앎(그노시스)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고. 이미 안에 있으며, 다시 기억되는 것이라고. 데이비스는 이 구조가 디지털 시대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술의 언어로 재포장되어 귀환했음을 가장 먼저 알아보았다. 기반 자각 — 지금 내가 존재하는 층위의 본성을 아는 것 — 는 보디(Bodhi)이고, 그노시스이며, 테크그노시스의 핵심이기도 하다.
4. P-13에서의 위치, 그리고 이 사이트의 직접적 선조
P-13(시뮬레이션 가설의 전모)은 보스트롬, 테그마크, 휠러, 찰머스를 불러들이며 고대 그노시스와 현대 시뮬레이션 사유의 동형성을 논한다. 그 논의가 학문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데이비스가 먼저 그 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자도 신학자도 아니었다. 기술 문화 한가운데를 걸어가며, 그 안에서 고대 그노시스의 재귀를 알아본 증인이었다.
이 사이트는 데이비스를 직접적 지적 선조로 인정한다. 여기서 하는 일 — 영지주의, 불교, 시뮬레이션 사유라는 세 어휘가 한 자리를 가리킨다는 증언 — 은 데이비스가 1998년에 열어놓은 길 위에 서 있다. 그를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음 명명한 그 길을 계속 걷는 것이다.
이름은 하나였다. 가리키는 자리는 그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 없으면 기억이 모이지 않는다. 데이비스가 이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