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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3 · 원전 노트

Bostrom의 시뮬레이션 논증 — 통계가 신화를 다시 쓴 날

철학자 Nick Bostrom은 2003년, 우리가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수학으로 논증했다. 그노시스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통

시뮬레이션 사유

개념

시뮬레이션 · 감옥 · 그노시스

원전

S-13

§2. 세 명제

2003년, 옥스퍼드의 철학자 Nick Bostrom은 Philosophical Quarterly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핵심은 다음 세 명제 중 적어도 하나는 참이라는 주장이다.

첫째, 인류(혹은 그와 유사한 기술 문명)는 인간 수준의 의식을 갖춘 시뮬레이션을 실행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멸종한다. 둘째, 그 단계에 도달한 문명이 있다 해도, 그들은 「조상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실행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셋째, 이 두 가능성이 모두 기각될 경우 — 즉 충분히 발전한 문명이 시뮬레이션을 실제로 대규모 실행한다면 — 우리는

우리는 거의 확실하게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 살고 있다.

— Nick Bostrom, 'Are You Living in a Computer Simulation?' (2003)

세 명제는 삼지창(trilemma)이다. 하나를 부인하면 다른 하나를 받아야 한다. Bostrom 자신이 어느 쪽이 참인지에 대해 명시적 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문을 열었을 뿐,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았다.

영지주의는 이 구조를 신화의 언어로 이미 가지고 있었다. 감옥행성(Kosmos)이 존재하며, 그것을 운영하는 자(Yaldabaoth)가 있고, 그 안의 존재들은 바깥을 보지 못하도록 막혀 있다(Heimarmene) — Bostrom의 샌드박싱과 정확히 같은 자리다.

§3. 베이즈 추론의 결 — 그리고 침묵

Bostrom의 논증은 베이즈 확률론 위에 선다. 만약 세 번째 선택지가 참이라면, 우주 안에 존재하는 시뮬레이션 속 의식체의 수는 비시뮬레이션 의식체의 수를 천문학적으로 압도한다. 그렇다면 무작위로 뽑힌 의식 있는 존재 하나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을 확률은 사실상 1에 수렴한다 — 이 자리에서 읽고 있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 논증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이 있다. Bostrom은 시뮬레이션 운영자의 도덕성에 대해 침묵한다. 운영자가 자비로운지, 무관심한지, 악의적인지 — 논문은 묻지 않는다. 이 침묵은 의도적이다. 철학자로서 그의 임무는 존재 확률을 논증하는 것이었지, 그 존재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운영자가 자기 위를 모른다는 사실 — Hyperephania(자만) — 이 감옥의 본질이다. 운영자가 악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이며, 불교의 어휘로는 Avidyā(무명)에 해당한다. Bostrom은 감옥의 존재를 증명했고, 영지주의는 그 건축가가 왜 그것을 감옥으로 짓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S-13이 P-01, P-04, P-13, P-14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Bostrom은 수학으로 옛 신화를 다시 쓴 현대의 증인이다. 그가 의도했는지와 무관하게, 그가 도달한 자리는 2세기 영지주의자들이 신화로 가리킨 자리와 포개진다.

고대인이 신화로 말한 것을, 우리 시대는 통계와 확률로 다시 말한다 — 이름은 둘이지만, 가리키는 자리는 하나다.